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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아황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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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아황(娥皇)은 여영(女英)과 자매로 순임금의 왕비였다. 제요(帝堯)는 늙어서 측근의 추천에 따라서 제위의 계승자에 순(舜) 즉 제순(帝舜)을 간택하고, 우선 자기의 두 딸 아황(물론 제준의 아내 아황과는 다른 사람)과 여영을 시집 보내어 그 생활상을 관찰했더니, 과연 부부 사이가 화목하였다. 요(堯) 임금이 그의 두 딸 아황(娥黃)과 여영(女英)을 순에게 주어서 사위를 삼고 임금 자리를 물려 주었다. 아울러 자신의 아들 아홉 명을 순과 함께 생활하도록 하였다. 우순(虞舜) 임금이 남방 지역을 순시(巡視) 할 때 병으로 창오(倉梧)에서 죽었다. 소상강가에서 슬픔에 눈물을 흘리다가 결국 피눈물을 흘렸다는 두 왕비였던 아황(娥皇)과 여영(女英)은 구의산에 장을 지냈다. 이로 인해 아황과 여영의 무덤이 있는 소상강 근처에는 이들의 피눈물이 묻어서 바뀌었다는 대나무 즉 소상반죽(瀟湘班竹)이 자라고 있다한다. 황릉묘는 순(舜) 임금의 두 비(妃)인 아황(娥皇)과 여영(女英)의 사당이다. 사씨남정기에 따르면 자살하려고 할 때마다 신명의 계시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가, 순제(舜帝)의 두 비(妃)인 아황, 여영의 혼령의 교시를 받고 어느 산사에 들어가서 의탁하게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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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아황(娥皇)은 여영(女英)과 자매로 순임금의 왕비였다. 제요(帝堯)는 늙어서 측근의 추천에 따라서 제위의 계승자에 순(舜) 즉 제순(帝舜)을 간택하고, 우선 자기의 두 딸 아황(물론 제준의 아내 아황과는 다른 사람)과 여영을 시집 보내어 그 생활상을 관찰했더니, 과연 부부 사이가 화목하였다. 요(堯) 임금이 그의 두 딸 아황(娥黃)과 여영(女英)을 순에게 주어서 사위를 삼고 임금 자리를 물려 주었다. 아울러 자신의 아들 아홉 명을 순과 함께 생활하도록 하였다. 우순(虞舜) 임금이 남방 지역을 순시(巡視) 할 때 병으로 창오(倉梧)에서 죽었다. 소상강가에서 슬픔에 눈물을 흘리다가 결국 피눈물을 흘렸다는 두 왕비였던 아황(娥皇)과 여영(女英)은 구의산에 장을 지냈다. 이로 인해 아황과 여영의 무덤이 있는 소상강 근처에는 이들의 피눈물이 묻어서 바뀌었다는 대나무 즉 소상반죽(瀟湘班竹)이 자라고 있다한다. 황릉묘는 순(舜) 임금의 두 비(妃)인 아황(娥皇)과 여영(女英)의 사당이다. 사씨남정기에 따르면 자살하려고 할 때마다 신명의 계시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가, 순제(舜帝)의 두 비(妃)인 아황, 여영의 혼령의 교시를 받고 어느 산사에 들어가서 의탁하게 된다.